2025년 3월, 코레일은 14년 동안 동결해오던 KTX 운임의 인상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동안 물가와 인건비가 상승했던 것을 감안하면 서울-부산 기준 59,800원이라는 요금의 부담감이 이용객의 입장에서 많이 줄어들기는 했다.
그리고 2023년 무렵부터 전국적으로 도시철도와 시내버스 등의 기본 운임이 올랐다. 부산의 경우는 기존의 도시철도 요금 1,300원을 1,600원으로 인상했고, 서울은 1,250원에서 1,550원으로 올릴 계획을 발표하고, 우선적으로 1,450원까지만 인상이 이루어진 상태이다.1
나는 이 시점에서 단순히 이용객들의 가계 부담 증가를 거론하고 싶지는 않다. “내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식의 피상적이고 뻔한 말들을 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공공요금 인상을 공론장에서 나누는 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핵심을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한국의 대중교통 운임과 관련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멘트는 다음과 같다.
- 한국은 전세계적으로 대중교통 요금이 저렴하고 체계가 잘 잡혀있다.
- 일본의 신칸센은 KTX보다 요금이 훨씬 비싸다.
- 노선의 운영 적자가 심각하다고 한다. 고로 요금 인상은 필요하다.
- 노인들의 무임승차를 없애야 한다.
나는 이런 주장을 들을 때마다 이렇게 반문한다. 일본과 같이 대중교통 운임이 비싼 경우에는 대부분 운영 주체가 민간으로 넘어간, 즉 ‘민영화’가 대부분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곳들은 운영 적자를 정부에서 보전하는 체계가 부실하고, 이것이 곧 이용객들에게 부담이 전개된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공기업, 공공기관의 역할은 사회적으로 반드시 필요하지만 민간기업이 감당하기에 어려운 필수 인프라를 책임진다는 것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적자가 나더라도 국가 또는 지자체 예산으로 이를 충당하는 것이 맞다. 그래서 나는 철도를 운영하는 공기업들의 적자가 심각하다고 언플하는 것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그 공기업이 당장 내일이라도 망할 것처럼 이야기 한다.
‘기업’이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는 어떤 법칙이 ‘공기업’에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공기업이 인프라를 잘 운영하는 것이 곧 사회 전체의 경제 효과를 낳는다. 특히 교통 분야는 사람 몸으로 치면 혈액순환과 같은 아주 중요한 부분인 만큼, 오늘날 우리가 저렴한 요금으로 이용하는 도시철도 덕분에 근거리의 여러 지역들을 하나의 생활권이 되었고, 여러 대도시끼리 연결된 고속철도는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압축하는 데에 성공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부산국제영화제나 지스타를 위해 주말 사이에 부산까지 당일치기를 하거나, 부산에서 성심당을 가기 위해 대전을 반나절 만에 다녀오는 일은 아주 흔한 광경이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노인들의 도시철도 무임승차 문제에도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노인들이 지하철에서 대부분의 일과를 보내는 일은 그렇게 하는 당사자들에게 비난할 일이 아니다. 그만큼 노인 복지가 아직도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노령연금도 부족한 게 현실이고, 노인 일자리도 형편 없다. 이런 상황에서 다짜고짜 노인 무임승차를 없애자고?
오히려 노인들이 대중교통을 무임승차 할 수 있는 일은 ‘도시철도’에 국한되고, 시내버스와 마을버스 등에는 해당하지 않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세권 대도시에 정착한 노인들만 대중교통 복지를 누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중소도시에 거주하거나, 전철역이 근처에 있긴 하지만 너무 높은 언덕에 집이 있어서 외출하는 것조차 엄두가 안 나는 상황이라면 결국 도시철도 무임승차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노인을 위한 교통복지는 강화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어떤 경제 위기나 사회적 혼란이 있을 때마다 ‘만만한’ 대상을 먼저 타겟으로 삼게 된다. 그렇게 되기 쉽다는 것을 잘 안다. 우리 사회가 개개인의 삶에 여유를 줄이고 ‘사유’할 기회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록 각자 마음 속에 소외된 이들을 더 쉽게 혐오하도록 만든다.
지금은 초중고교 무상급식이 당연한 것이 되었지만, 불과 10에서 20년 전까지는 “부잣집 아이들한테까지 세금으로 점심밥을 먹여야 하느냐”는 의견이 다수를 이루었었다. 정작 새학기가 될 때마다 자기집이 가난하다는 것을 일일히 증명하느라 바빴던 학생들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었다.
일부 남성들은 자신이 취업이 되지 않는 원인으로 또래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꼽기도 한다. 이유는 자신들이 군대에 다녀오는 사이에 여성들이 이미 자신들을 추월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들의 옹졸함은 둘째치고, 거대하고 견고한 유리천장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여성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남녀 갈등’이라는 납작한 표현 따위로 얼버무려진 기나긴 평행선은 이렇게 생각머리가 못난 일부 남성들이 자초한 일이다. 그들이 여성가족부 해체를 공약한 윤석열을 찍은 결과가 이거다.
이 글은 대중교통 운임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결국은 우리가 공론장에서 어떤 사안을 이야기 하든 겉으로 보이는 돈의 액수만을 따지는 풍조를 버려야 한다는 걸 이야기 하고자 한다. 사회간접자본은 말 그대로 ‘간접’적인 영역이다. 거기에 드는 예산을 줄인다고 해서 당장 표가 나지는 않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아주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것이 많은 이들이 민영화는 커녕 ‘부분 민영화’조차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이다. 코레일은 수서고속선(SRT)의 민영화로 인해 손실을 보고 있고, 한국통신공사가 민영화 되고 20년 넘게 흐른 지금 우리는 통신3사의 5G 사기극에 놀아나는 신세가 되지 않았는가?
이런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다같이 더 많은 요금을 부담함으로써 난관을 극복하자고 결의해야 할까? 아니면, KTX와 SRT를 통합하고 비정상적인 철도 운영 체계를 재정비 하라고 요구해야 할까?
- 참고로 수도권의 요금 체계는 거리비례제를 도입하여 기본요금은 타시도에 비해 약간 저렴할 수 있어도, 거리에 따라 요금이 계속 붙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절대 저렴하지 않다. 인천 주안역에서 서울 홍대입구역까지 갈 때 요금은 1,800원이다. 반면 부산과 같이 ‘구간요금제’를 도입하는 경우에는 2구간으로 넘어갈 때에는 200원만 추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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