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잠기는 공간

생각의 강에 댐을 쌓지 말자. 바다와 만나는 길을 막지 마라.


진짜 송구영신

매년 연말연시가 되면 의무감에 하던 것들이 각자 있기 마련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남들 다 하는 뻔한 건 하기 싫었고, 그래서 해가 바뀌는 시점에도 컴퓨터 시계와 지상파 방송 생중계를 바라보면서 새해 카운트다운에 동참하는 것 말고는 하는 일이 없었다. 새해 다짐이라거나 연말정산 같은 건 딱히 하지 않았다.

변수가 생긴 건 2024년 연초였는데, 2023년 한 해는 개인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고민과 위기가 겹치면서 불확실성이 강했고, 이로 인해 2024년이 좀 더 행복하고 평안하길 바라는 희망을 가득 안고 있었다. 포기하기 싫었고, 비슷한 고민을 먼저 했던 나의 인생 선배들이 내게 해주었던 희망의 메시지를 믿고 싶었다.

그래서 2024년에는 평생 보지도 않았던 새해 해돋이를 보겠다고 이른 새벽에 송정으로 향했다.

부산 송정 바닷가에서 바라본 해돋이 (2024-01-01)

해의 모습이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구름 뒤부터 퍼지는 강한 빛줄기가 색다른 연출미를 보여준 듯했다.

이전에는 그저 식상하고 유치해 보였던 많은 어떤 ‘의식’들을 정작 내가 절박해지니까 하게 되는 것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많은 것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무미건조한 일상을 추구했던 걸지도… 그것을 꼭 나쁘다고 볼 것은 아니라고 해도, 나는 그동안 스스로 자주 무기력하고 마음의 에너지가 부족함을 느끼며 만성피로에 시달렸던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미술관 전시 내부.
‘이번 겨울도’, ‘부산에서 보내려고’ 라는 대사와 새가 그려져 있는 현수막이 매달려 있다.
(2024-03-30)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미술관이 생각나면 곧바로 찾아가는 편이다. 근처에 산책을 하다가 미술관이 보이면 일단 들어가보는 것이 습관이다. 혹자는 나의 이런 행동 패턴을 그저 “있어 보이려고 허세 부리는” 정도로 반쯤 농담을 섞어 일축하지만, 내게는 생각보다 깊은 고찰이 담겨있다. 우선 미술관, 박람회장(코엑스, 킨텍스, 벡스코 같은) 같은 곳들이 왜 공공 예산으로 운영이 되는지 고민해 보기 이전에,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미술관을 갔을 때마다 느끼는 충족감 같은 것이 있다. 보통 미술관에 갈 때마다 어떤 작품이나 기록들을 보게 되고, 그러면서 필연적으로 예술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되새기고 공감하려 하는 과정이 생기는데 이때 스스로 많은 영감이나 위로를 받고 나오는 것 같다.

그리고 부차적인 문제지만… 스마트폰 중독에 빠지기 쉬운 내 입장에서 미술관을 가면 사진을 찍을 때 빼고 휴대폰 화면에 몰두할 일이 적어진다. 잠깐이나마 ‘디지털 디톡스’를 하고 온다는 것!

어쩌다 찍힌 사진인지 모르겠는데, 흰 운동화에 검은색 바지 차림으로 아스팔트 위를 걷다가
한쪽 다리만 내밀고 찍은 사진이다
(2024-06)

지난 봄에는 이사를 했다. 나를 힘들게 하고 가계부채를 줄이지 못하게 한 가장 큰 원흉이 집이었다.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고, 자신감이 붙어 무리하게 전세집의 규모를 키운 지난날의 나에게 스스로 원망을 하다가도, 아니 뭐… 갑자기 전세대출 이자가 그렇게 껑충 뛸 줄 누가 알았겠나? 아무튼 어지간한 월세보다도 비싼 값을 치르다가 계약 종료일까지 있어달라던 집주인의 강력한 요청(…)으로 인해 이사 전까지 여러모로 허리띠 많이 졸라맸다. 사람이 돈 모으는 재미라도 있으면 그거 생각해서라도 일을 좀 의욕있게 했을 텐데, 그때는 그것도 아니었다. 번아웃과 피로감으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는데 그걸 또 견뎠다.

대중교통이 사실상 구색만 갖추었던 이전 동네에 비해, 지하철역도 근처에 있고 도심지와의 접근성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드디어 반드시 차를 가지고 다녀야만 어디든 갈 수 있는 상황으로부터 해방 된 것도 있고, 무엇보다 가장 저렴한 조건의 전세대출과 이전보다 절반 이상 줄어든 보증금 덕분에 고정지출을 정말 많이 줄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때 했던 내 결정이 위기를 딛고 다시 일어서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이며 이 과정까지 함께했던 많은 이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렇게 숨통이 확 트인 상황이 되니까 이것저것 스스로 억압했던 많은 욕구들을 해방하고자 했다. 줄어든 고정 지출 만큼 그동안 사치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에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이 있듯, 때마침 이직을 하고자 하는 어떤 의지와 기회가 생기면서 그동안 나를 번아웃에 빠지게 했던 곳으로부터 퇴사했다. 비록 이직은 반쪽짜리 성공으로 금방 막을 내렸고, 그때 당시에는 많은 고뇌가 있었지만 지금 떠올려보면 스스로 시의적절하고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본다. 당장 그 회사 그만 둔다고 큰 일 날 것도 아니고, 오히려 금전적 환경적 여유가 허락할 때 시도해서 좋으면 좋았지 나쁠 게 어딨냐는 말이다.

아무튼 2024년 여름은 그렇게 실험적인 좌충우돌과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는 과도기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봄이 던진 미끼를 여름이 덥썩 물었다고 봐야 하나?

설악산이 잘 보이는 강원도 고성 어딘가. 부산에서부터 직접 운전해서 고성 민통선까지 다녀왔다.
(2024-08-01)

기왕 이직도 말아먹고 시간은 붕 떴는데, 이럴 때 아니면 가지 못할 곳에 다녀와야겠다 하는 결심을 했다. 그동안 열심히 직장생활 하며 살아가는 방법에만 몰두하느라, 이렇게 일을 하지 않고 쉬는 일이 처음에는 불안이 앞섰다. 이래도 되는 걸까… 주변 사람들이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하다가 시간이 좀 지나니까 남들이 뭐라 하든 나를 가장 많이, 먼저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뿐이었다. 내가 먼저 건강해야 주변에게 애정을 쏟아부을 수 있다는 진리를 머리로만 이해했었다.

사실 그런 거창한 생각까지 도달하지는 않았어도,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서 20대의 절반 넘는 세월을 멈추지 않고 일만 하며 살아온 나에게 이 정도 보상은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어리광 섞인 욕심이 컸다.

그래서 나는 지난 여름에 내가 현재 살고 있는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동해안 따라 이동했다. 카메라에 도저히 담을 수 없는 넓고 푸른 바다가 운전하는 내내 펼쳐졌다. 7시간을 주행했지만, 길었던 시간에 비해서 지루하지 않았다. 운 좋게 고성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던 친구 집의 방 한 칸을 얻어서 숙식을 했고, 마지막날에 통일전망대까지 들렸다가 집에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청명한 하늘 위에 떠다니는 커다란 뭉게구름
(2024-09)

그렇지만 퇴사 이후 마지막 월급과 퇴직금을 탕진해서는 안 된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급한대로 단기계약직 자리라도 알아보던 중에 한 중견기업 공장에서 단기계약직을 구하는 공고가 내 눈에 들어온다. 생산직 경력이 워낙 길었던 데다가 이런 자리는 사람을 많이 뽑기도 해서 서류 통과는 쉽게 되었다. 면접 후 연락이 생각보다 오랫동안 안 와서 포기하던 찰나에 최종 합격 문자를 받고, 곧바로 입사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때 입사한 회사는 새해가 된 지금 계약을 조금 더 연장해서 잘 다니는 중이다. 정직원 승격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고 싶을 만큼 만족하는 편이다. 추후에 욕심이 커진다면 모를까…

추석 연휴를 보내는 중에 나의 고교 시절 담임을 맡으셨던 선생님의 부고 소식을 전달 받았다. 급하게 비행기 티켓을 끊고 부산에서 인천까지 달려갔다. 한참을 유가족들과 선생님에 관한 추억을 나누었다. 그가 젊었을 때 처음 교사가 된 이후로 눈을 감기 전까지 제자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내가 지금까지 12년 교과 과정에서 수없이 만난 교사들 중에 기억에 남는 몇 안 되는 선생님 중 한 명이었다. 예를 갖출 의상이 마땅히 없어 얇은 쥐색 자켓과 흰 셔츠, 검은 바지, 구두 차림으로 햇볕이 강하고 더운 어느 날의 인천 거리를 하염없이 걷다가 지친 날이었다. 안 그래도 경황이 없어서 밤에 3시간 밖에 못잤기 때문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부산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동안
햇살을 가득 머금은 승강장의 풍경을 담았다.
(2024-12-31)

11월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이 된 나의 이웃을 축하하기 위해 대전으로 향했다. 그날은 비가 올 거라는 예상과 달리 아주 화창했다. 쾌청한 하늘과 적절한 온기 속에서 치뤄진 결혼식은 하객인 나조차 들뜨게 했다. 결혼식 자체가 너무 오랜만인 내게 낯설고 서툴렀던 부분들이 있었지만, 그것도 잠깐 뿐이었다.

나는 어느덧 반드시 연애를 하지 않고도, 혹은 연인으로 발전할 수 있는 어떤 관계를 진전 시키지 않고도 오롯이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익숙한 걸 넘어서 만족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혼자서도 즐겁게 살아가는 독립적인 사람끼리 연애를 해야 건강하다는 조언을 한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되어가는 나를 발견하는 요즘이었다.

그러다가 어느덧 내게 예상치 못한 새로운 관계가 생겼다. 그저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길래” 사귀는 것도 아니고, 연애가 하고 싶어서 누군가를 만나는 게 아닌 “그 사람이 좋아서 하는 연애”를 나는 줄곧 주장하고 추구했다. 설레는 마음은 당연하지만, 나와 맺어진 이 사람이 너무 소중해서 조심스러운 마음이 훨씬 앞섰다.

광안리 겨울바다의 풍경
(2025-01-01)

이번 새해는 이전과는 다르게 조용하고 아주 평범하게 찾아왔다. 내게 있어서 어떤 연도가 바뀐 시점이 중요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다만 분명한 건,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 연말에 도달할 수록 내 삶은 많은 부분이 바뀌고 있었고, 또한 내가 스스로 내 삶을 역동적으로 바꿔나가고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2025년 1월에도 나는 머물지 않고 나아가고 있음을 체감한다.

내 삶은 물론이고, 우리가 사는 이곳이 엄청난 충격과 격변을 맞이하였던 지난 연말을 돌아보면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던 일상들이 사실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느끼게 했다. 그걸 깨달을 수록 나와 소중한 이웃들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말이다. 그만큼 나를 돌보는 일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 나를 잘 돌봐야 남에게 애정을 쏟을 수 있다. 지치고 주저앉고 싶은 사람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조언은 무조건 일어서서 버티라는 말이 아니다. 때로는 주저앉아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우리의 몸이 독감에 걸려서 며칠 요양하는 것처럼, 마음이 주저 앉으려 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에 쉴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저 마음이 누운 자리에 적절한 온습도와 진정에 좋은 아로마 디퓨저, 아늑한 조명을 놓아준다고 상상해보자. 우리는 우리 마음을 그렇게 보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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